아마도 많은 이들이 그를 KBS의 간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1박 2일>의 몰래 카메라 속 순진한 ‘신입 PD’로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깊은 내공이 깔린 자신만의 세계가 꼭 딕 부르너의 일러스트처럼 선명했다.
일단 지르고 보는 보헤미안, 현실은 놓지 않는다
휴학과 휴학. 그의 9년간의 대학생활을 정리하자면 대강 그러하다. 20대 초반, 친근감이 가는 2.2학점을 뒤로 한 채 군대에 간 유호진은 비로소 ‘앞으로 뭘 하며 살아야 하나?’라는 막연한 고민 속에 빠져들었다. 역시 막연하게만 언론계에 종사하고 싶다는 희망을 곱씹던 말년병장 유호진에게 마침 적절한 기회 하나가 굴러들어왔다. 잡지사 <마리끌레르>의 인턴직이었다.
<마리끌레르>에 다니던 아는 선배가 일을 장기간 쉬면서 ‘인턴 할 사람 없느냐’고 미니홈피에 올린 글을 우연히 보게 됐어요. 그때 전 말년병장이니까 시간이 많아서 온갖 잡지를 다 읽었어요. 잡지란 매체에 대한 기본적인 감이 있으니까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 당시는 마침 한창 기존의 여성지에 드물던 자동차나 전자 쪽 기사가 늘어나는 시점이었어요. 이런 분야에 관심이 많던 차에, 기회가 잘 맞아서 뽑힐 수 있었죠. 2개월 일하는 조건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장하게 됐고 그렇게 1년, 2년이 훌쩍 가더군요.
이것저것 경험한 끝에 제가 깨달은 것은, 그 어떤 일을 해봐도 결코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오히려 진짜 싫어서 ‘이건 진짜 아니구나!’ 싶은 일은 있죠. 하지만, 반대로 정말 100% 맘에 든 일은 지금껏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대강 방송국 기자, PD, 혹은 잡지 에디터 정도로 추려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중 가장 현실적으로 저에게 맞아 보이는 직업을 골랐던 거예요. 방송국 PD 시험에 떨어졌다면 아마도 대기업에 갔을지 모르죠. 아니면 항공사에도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리 갔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느 쪽이라도 후회는 없었을 것’이라 말하는 그는 군더더기 없이 현실적이었다. 그를 최적의 길로 이끈 것은, 최대한 직접 겪어보되 경험을 미화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태도였다.
PD, 수치화할 수 없는 내공이 만드는 세계
유호진은 KBS PD 면접 당시에 ‘음악 프로 PD가 아니라면 일하고 싶지 않다.’라는 당돌한 발언을 했던바 있다. 처음부터 드라마국을 제치고 오로지 예능국(음악프로는 예능국 소속)을 지망한 것. 그는 “이제 생각하면 제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KBS는 그런 절 왜 뽑았는지도 모르겠어요.”라며 멋쩍어하지만, 그만큼 음악 프로그램을 맡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먹는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듯 KBS는 별안간 <1박 2일>로 그를 배치하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그는 매일매일 적응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전 원래 집에 TV가 없어서 버라이어티를 거의 아예 보지도 않던 사람이었어요. 제가 처음 배정되었을 무렵에는 <1박 2일>이 이미 높은 인기를 얻고 궤도에 들어선 프로그램이었는데, 그래서 나 스스로 뭔가 새로운 걸 할 수 있으리란 느낌은 없었죠. 그냥 난 아직 편집도 할 줄 모르는 신입사원인데 ‘저런 인기 프로그램을 맡아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고 멍하게 생각했어요. 배정받은 뒤 지난 방송을 한꺼번에 몰아서 보고 들어갔죠. 요새도 타 방송 모니터링에 꼭 시간을 투자해요.
예능 경험이 다 나중에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고 있어요. 새삼 깨달은 것도 있죠. 편집실에 앉아서 녹화된 테이프를 빨리 감다 보면, 자연 다큐멘터리가 아니고서야 60분짜리 프로그램의 59분 30초 내내 사람이 나와요. 그걸 보면서 PD란 직업은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없이는 하기가 어려운 일이란 걸 느끼게 됐어요. 또 외부에서 한 경험만큼이나 조용히 혼자서 많이 보고 듣고 읽는 내적 경험이 큰 힘이 되는 듯해요. PD는 이제까지 겪었던 컨텐츠를 조합해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해내는 작업이거든요. 그동안 자기가 무수한 콘텐츠를 접하면서 홀로 자신을 연마하며 쌓은 시간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죠. 영화와 음악, 책 등과 많이 친해져야 해요.
10년 후 남은 꿈의 실현을 일궈가는 현실주의자
PD로서 그의 최종 목표는 꿈꾸던 음악 프로그램을 맡는 것이다. 98학번인 그는 서태지나 듀스, DJ.DOC, 삐삐롱스타킹 등 가요사의 굵직한 가수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침체기를 맞은 가요계에 당시 느꼈던 벅찬 설렘을 돌려주는 것이 그의 소망이다.
전 청소년기에 김광석, 유재하를 듣고 나서 딱 ‘팝송 안 들어도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그렇게 느꼈던 것처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좋은 뮤지션을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하고 싶어요. 그런데 좀 더 재미있게 포장하고 싶은 거죠. 현재 있는 인디 뮤지션을 소개하는 가요 프로 그램은 모두 좋지만, 대중성에는 실패했다고 봐요. 제가 예능을 하면서 배운 노하우를 통해 좀더 독창적인 가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게 꿈이에요. 그래서 나중에 인디 뮤지션들이 고맙다고 우리 집에 한우 세트를 많이 가져오면 좋겠죠?(웃음)
‘10년 후쯤이면 아마도 음악 프로그램을 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웃어 보이는 그에겐 조급함이 없었다. ‘지나치게 마이너적인 감성’을 스스로 단점으로 꼽으며 전담 프로그램을 맡기까진 배울 것 고칠 것이 한참 많다 중얼거린다. 그는 그렇게 여전히 한 발 한발 차근차근 꿈을 향해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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